포도 말라붙고 라인강 바닥…폭염에 유럽 경제 휘청

해외

이데일리,

2026년 August 31일, PM 02:34

[이데일리 김윤지 기자] 올여름 유럽을 덮친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이 농작물 생산을 위축시키고 물류와 제조업에 차질을 빚게 하는 등 유럽 경제 전반에 부담을 키우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토마스 드보르작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기록적인 폭염이 유럽의 식품 물가상승률을 1~2%포인트 끌어올리고 3분기 유로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약 0.2%포인트 낮출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미 성장세가 부진한 유럽 경제에서 경기침체까지 초래할 가능성은 낮지만 경제를 정체 상태로 몰아넣기에는 충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여름 유럽에서는 잇단 폭염이 각종 기온 기록을 갈아치웠다. 고온과 가뭄으로 위력이 커진 산불은 프랑스와 스페인을 휩쓸었고 영국 웨일스처럼 산불이 드물었던 지역에서도 발생했다. 중부 유럽의 강들은 바닥을 드러냈고 농작물은 시들었다. 수위가 낮아진 강에서는 선박 운항에 차질이 빚어졌고 폭염으로 열차가 탈선하는 등 일상과 경제활동 전반이 흔들렸다.

프랑스에 있는 한 와이너리(사진=AFP)
프랑스에 있는 한 와이너리(사진=AFP)
유럽연합(EU) 지구관측 프로그램 코페르니쿠스에 따르면 서유럽은 올해 6~7월 사상 가장 더운 시기를 보냈다. 영국의 7월 강수량은 6.5㎜에 그쳐 관련 기록이 시작된 1836년 이후 가장 적었다. 종전 최저치였던 1911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베리아반도와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의 토양 수분도 1979년 이후 관련 통계 가운데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농작물 수확에 타격을 줬다. 루아르·다뉴브·라인·포 등 유럽을 대표하는 4개 강의 수위도 8월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곳은 농업이다. 영국 국토의 4분의 3이 가뭄 상태에 놓였으며 최근 5년 사이 세 번째 가뭄이다. 영국 비영리단체 에너지·기후정보단위(ECIU)는 올해 영국의 농작물 수확량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이미 높은 식품 가격을 추가로 밀어올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채소 작황이 부진한 데다 더위로 소가 스트레스를 받고 목초 생육까지 늦어지면서 우유 생산량도 감소했다.

와인 산지인 프랑스 보르도에서도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보르도의 와인 농가들은 온화한 기후와 주기적인 강우 덕분에 관개시설 없이 포도나무를 재배해왔지만 올해는 극심한 가뭄과 폭염으로 일부 농가가 당국의 특별 허가를 받아 직접 물을 공급해야 했다.

한 와이너리의 경우 트랙터와 인력을 동원해 어린 포도나무에 물을 공급하는 데 하루 약 1500유로(약 238만원)를 지출했다. 폭염으로 포도가 평년보다 빠르게 익으면서 수확 시기도 3주가량 앞당겨졌다. 이 와이너리는 폭염으로 화이트와인용 포도 생산량이 3분의 1, 레드와인용 포도는 절반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유럽 경제 전반에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는 라인강 수위 하락에 따른 물류 차질이 꼽힌다. 라인강은 독일 제조업의 핵심 물류 통로다. 수위 하락으로 선박 운항이 어려워지면 독일 기업의 원자재 반입과 제품 출하가 차질을 빚고, 이는 다시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등 주변국의 공급업체와 고객사로 연쇄적으로 확산할 수 있다.

프랑스가 입을 경제적 손실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 환경장관 모니크 바르뷔에 따르면 폭염·가뭄·산불로 EU 2위 경제국인 프랑스가 입을 피해는 최대 150억유로(약 23조 8000억원), GDP의 0.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이미 어려운 프랑스 정부의 재정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전망이다.

장기적으로는 폭염이 노동생산성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독일 보험사 알리안츠에 따르면 기온이 30~35도 구간에서 1도 상승할 때마다 노동생산성은 약 3% 감소한다. 지난 10년 가운데 가장 더웠던 5개년 수준의 고온이 앞으로 5년간 반복될 경우 프랑스와 같은 취약국은 2030년까지 누적 GDP가 5~7%, 약 2400억달러(약 329조원) 감소할 수 있다고 알리안츠는 추산했다.

문제는 유럽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는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이미 현실화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기후적응’에는 상대적으로 준비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병원과 학교 등에 냉방시설을 확충하고 농가의 작물 전환을 지원하는 한편 관개시설과 저수지를 늘리는 등 변화한 기후를 전제로 한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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