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가 인과관계 증명하나"…가습기살균제 배상안에 피해자들 '분통'

사회

이데일리,

2026년 August 31일, PM 05:36

[이데일리 석지헌 기자 김태섭 수습기자] “지금도 4등급이면 가습기살균제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건데, 세부 병리검사 증빙자료를 어떻게 내라는 겁니까.”

31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간담회에서 피해자 자녀 가모 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판정은 인과관계 가능성에 따라 1등급(‘거의 확실함’)부터 4등급(‘거의 없음’)까지 나뉜다. 가 씨의 아버지는 원인 미상의 간질성 폐질환을 진단받은 뒤 폐암까지 앓았지만, 관련 서류를 여러 차례 제출하고도 가장 낮은 4등급 판정이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31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간담회에서 피해자들이 정부의 배상 방안에 항의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김태섭 수습기자)
31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간담회에서 피해자들이 정부의 배상 방안에 항의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김태섭 수습기자)
◇“2000억원이냐 2조원이냐”…고성 오간 간담회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날 오는 10월 시행되는 손해배상 체계와 시행령 내용을 피해자들에게 설명했다. 사전 신청자 180명 가운데 100여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피해 인정 기준과 배상 규모를 놓고 항의가 잇따르면서 곳곳에서 고성이 오갔다.

간질성폐질환 피해유족이자 피해자단체 대표인 김미란 씨는 “가습기살균제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2019년 피해자 5000명에 약 2조원이라는 추산치를 내놨는데 정부는 왜 자꾸 국가 분담 비율 30%, 2000억원 이야기를 하느냐”며 “오늘도 의견수렴만 했다는 알리바이용 간담회 아니냐”고 따졌다.

조현수 기후에너지환경부 환경보건국장이 “배상 총액이 확정된 게 아니다. 법상 사후 정산하도록 돼 있다”고 설명하려 하자 김씨가 다시 반발했다. 손삼기 환경피해구제과장도 “말씀하시는 내용을 모두 시행령에 반영하지 못한 건 맞다”면서도 “질문했으면 답변할 기회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들어보고 하자”, “그럴 거면 집에 가라”는 고성까지 나왔다.

김성환 장관이 “이렇게 하면 간담회를 할 수 없다. 그럼 돌아가서 따로 하자”고 말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격해졌다. 김 장관은 이후 “얼마나 안타깝고 억울하겠느냐”면서도 “정부 입장도 조금은 헤아려 달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이날 위자료 현실화와 입증책임 전환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성인은 6억원, 미성년자는 10억원 이상으로 위자료를 책정하고 2016년 옥시 배상 기준을 2026년 물가 수준으로 재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출과 질환이 확인되면 피해자가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대신 국가와 기업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도 내놨다.

피해 인정 기준을 둘러싼 호소도 이어졌다. 한 피해자는 “기관지 관련해 4개 병원에서 진단받았는데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노출은 됐는데 피해 인정이 안 된 분들이 문제”라며 “지정병원이 아니어도 본인이 편리한 병원에서 진료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답했다.

새 배상체계는 과거 사회적 조정과 달리 개별 기업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국가와 사업자의 책임 및 분담금 부과 근거를 법에 담았다. 2022년 사회적조정위원회가 마련한 7795억~9240억원 규모의 조정안은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산업이 동의하지 않으면서 무산된 바 있다.

배상 신청은 10월 8일부터 6개월간 진행된다. 기존 구제급여 수급자가 이 기간 안에 손해배상을 신청하지 않으면 내년 4월 8일부터 구제급여 지급이 중단된다.

정부가 인정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지난 6월 기준 6037명이며 이 가운데 1422명이 숨졌다. 지금까지 지급된 구제급여와 지원금은 총 2165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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